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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개요   :  멜로/로맨스, 드라마, 서스펜스

   개봉일   :  2022-06-29

   감독   :  박찬욱

   출연   :  탕웨이, 박해일

   등급   :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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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 그리는 곳은 정통 추리소설의 세계입니다. 탐정은 정장차림의 예의바른 신사이고 범인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복잡한 알리바이 트릭을 동원해 살인을 저지르는 곳이죠. 영화가 다루는 '살인용의자와 사랑에 빠진 형사(또는 사립탐정)'의 설정은 필름 누아르 단골 소재 같지만 그보다 더 오래되었습니다. 보통 장르 역사에서는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시작점으로 잡고 있지만 이게 정말로 처음은 아니겠지요. 박찬욱 자신은 주인공 형사 해준의 캐릭터를 짤 때 마르틴 베크를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1부는 부산에서 벌어집니다. 은퇴한 공무원 기도수가 암벽에서 떨어져 죽고 유일한 용의자는 거의 조카뻘은 되는 거 같은 중국인 아내 송서래입니다. 서래는 그 동안 꾸준히 남편에게 학대당해왔고요. 하지만 전문 간병인인 서래에겐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알리바이가 없다고 해도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고요.


수사과정 중 해준과 서래는 사랑에 빠집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모두 추리물의 틀 안에서 페티시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해준이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서래가 아주 높은 확률로 남편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사실은 이 캐릭터의 결정적인 매력이죠. 서래와 해준의 연애는 모두 경찰 수사의 과정 안에 흡수되고 그 안에서 가장 강한 성적 긴장감이 발생합니다. 오히려 이들이 짧게나마 정상적인 데이트를 할 때는 그 긴장감이 없어요.


아마 박찬욱이 만든 영화 중 가장 변태스러운 영화일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폭력과 섹스를 최대한 줄였기 때문이겠지요. 이 영화에서 로맨스와 관련된 모든 대사와 행동은 일단 섹스를 제외한 조건에서 진행됩니다. 오로지 변태스럽기 짝이 없는 전희로만 구성된 로맨스지요. 그리고 이들이 전희의 재료로 삼는 추리소설 장르에서 죽음은 필수이기 때문에 1부가 종결되고 안개 낀 가상 도시 이포로 무대가 옮겨진 2부에서도 시체가 등장합니다. 이들의 로맨스는 누군가가 죽고 해찬이 탐정으로서 개입할 때에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똑바르지 않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아니, 귀에 들어오는 것은 언어입니다. 송서래는 중국인이고, 이 역할은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한국어를 깊이 배운 적이 없던 탕웨이가 연기하고 있지요. 서래의 한국어는 능숙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종종 온전한 대화를 위해 통역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오로지 외국인의 언어에서만 발견되는 특유의 매력과 미스터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언어는 독특한 문어체 대사를 구사하는 해준의 언어와 교묘한 화음을 이루죠. [헤어질 결심]은 아마 언어 연속체 안에 존재하는 한국어를 가장 매력적으로 다룬 한국 영화일 거예요.


해준이 형식적인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영화의 중심은 어쩔 수 없이 서래입니다. 추리물은 미스터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고 서래는 미스터리 자체니까요. 그리고 서래의 미스터리는 해결되어도 매력을 잃지 않습니다. 그만큼이나 자기만의 특별한 동기와 행동방식을 가진 사람이거든요. 여기에 탕웨이 개인의 매력과 박찬욱/정선경 특유의 여성 캐릭터 구축이 더해지면 오싹하지만 매혹적인 초상이 만들어집니다.


[헤어질 결심]은 매력적인 로맨스가 갖추어야 할 거의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복잡하고 교묘하고 아름답고 종종 사악하게 우스꽝스러운 퍼즐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 조각들을 찾고 조립하는 과정은 엄청나게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천만영화'를 만드는 일반 관객들 대부분은 굳이 이런 재미를 적극적으로 찾을 생각이 없을 거예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