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25-03-26
감독 : 미겔 고미쉬
출연 : 크리스타 알파이아테, 곤살로 와딩톤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그랜드 투어]는 제가 오직 텍스트로만 알고 있던 포르투갈 감독 미겔 고메스의 첫 국내 수입작입니다.
제목은 옛날 영국의 유한계급 청소년들의 유럽 대륙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을 의미하는 표현에서 따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시대배경은 1918년. 버마 랑군에서 일하는 영국인 공무원 에드워드는 약혼녀 몰리가 결혼하려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싱가포르로 달아납니다.
하지만 몰리는 끈질기게 에드워드의 뒤를 추적하고 에드워드의 여행은 태국, 베트남, 일본, 중국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의 주인공은 에드워드이고 2부의 주인공은 몰리예요. 에드워드가 영화 절반 동안 간 길을 몰리가 따라가는 식입니다.
줄거리만 들었을 때 제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조지 버나드 쇼의 [인간과 초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이야기는 별로 닮은 게 없더군요.
영화를 보는 동안엔 이 이야기가 한참 와이드스크린 대작이 유행이던 1960년대에 코미디로 만들어졌어도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 건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이 영화에서 가장 튀는 부분은 스타일이고 이건 영화의 줄거리만 읽고는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일단 영화의 로케이션 촬영은 대부분 21세기 현대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다큐멘터리인 거예요.
배우가 나와 스토리를 진행하는 장면들은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찍었고요.
그 위로 이야기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흐르는데, 그건 모두 배경이 되는 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 언어로 읊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은 포르투갈 영화이기 때문에 영어는 모두 포르투갈어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종종 어색해지죠.
20세기 아시아 사람들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서툰 포르투갈어를 하면 '이 언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어요.
하긴 아시아 사람들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하는 것 자체가 뭔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제국주의에 대한 묵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결혼으로부터 무책임하게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는 에드워드와는 달리 몰리가 이 나라의 사람들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은 별 생각 없이 아시아 여러 나라를 떠도는 지친 서양 사람의 몽상일 수도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여행하는 나라를 깊게 들여다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영화는 여행하는 서양 사람들에 자신을 대입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그게 이 영화의 주제와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자꾸 이렇게 말을 흐리는 건 이 영화의 몽상적 성격 속에서 또렷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로서는 한없이 이어지는 영화적 몽상 속에 몸을 맡기고 흘러갈 수밖에 없어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