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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

   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12-12-19

   감독   :  미카엘 하네케

   출연   :  장 루이 트랭티냥, 에마뉘엘 리바, 이자벨 위페르

   등급   :  15세 이상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콘서트장의 관객석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알렉상드르라는 이름의 피아니스트의 콘서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우리의 주인공 안느와 조르주는 화면 왼쪽 중앙 부분에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미하엘 하네케가 관객들의 사전 지식을 어느 정도 잡았는지 궁금했습니다. 내용에 대한 아무런 사전작업도 없이 케이블 채널 서핑을 하다가 [아무르]라는 영화가 걸려 처음부터 보게 된 관객들은 과연 여기서 주인공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물론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이에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대부분 기초적인 내용은 알고 왔을 거고, 모르는 사람도 포스터를 통해 이 영화가 노인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아마 미하엘 하네케의 신작을 보기 위해 예술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사전 정보가 없다고 해도 장 루이 트랭티냥과 엠마뉘엘 리바의 얼굴을 알아볼 것입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건, [아무르]는 두 배우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영화입니다.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젊은 시절 대표작들을 알고 있을 것이며, 그 옛 시절의 모습을 지금의 나이 든 모습과 연결하며 그 동안 흐른 세월을 더 확실하게 곱씹을 수 있겠지요.

심난하게 들리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영화가 시작될 무렵, 안느와 조르주는 정말 질투심 날 만큼 좋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지만, 척 봐도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만나 평생을 별다른 갈등 없이 보내며 서로의 존재를 자신의 삶에 완전히 녹여낸 완벽한 결혼생활을 해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죽을 날이 머지 않았고, 영국인 음악가와 결혼한 딸의 결혼 생활이 별로 행복해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지요.

파국이 찾아옵니다. 아내 안느가 갑자기 마비 증상을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반신불수가 된 것이죠. 조르주는 그런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봅니다. 수십 년간 조용하게 지속된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 동안에도 결코 꺼질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 이 상태를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일까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결혼 서약문의 이러한 문구는 거의 클리셰가 되어서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같이 살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요. 배우자의 죽음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고 멀쩡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제 주변에도 꽤 됩니다. 그러나 안느와 조르주와 같은 사람들은 이런 결말에 가장 끔찍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이상적인 결혼일수록 결말의 고통은 끔찍합니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보다 현실적인 사회적인 이슈, 그러니까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건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사회적 이슈보다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 자체에 관심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강렬한 것인지, 그런 고통이 두 주인공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이들 [아무르]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들 중 가장 따뜻하고 인간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하네케의 영화들 중 [아무르]처럼 고통스러웠던 작품도 없었습니다. 그의 다른 영화에서와는 달리, 이 영화에는 관객들과 주인공들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안느와 조르주가 체험하는 고통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콘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