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SF, 액션
개봉일 : 2019-10-30
감독 : 팀 밀러
출연 : 맥켄지 데이비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나탈리아 레이즈, 가브리엘 루나
등급 : 15세 관람가
전 첫 번째 [터미네이터] 이야기가 거의 완벽하게 자기완결적인 이야기이고, 여기에 붙은 속편들은 다 잉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터미네이터 2]는 훌륭한 잉여였고 완벽하게 끝난 영화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지요. 팬들은 카메론이 감독하지 않은 세 편의 [터미네이터] 영화들을 싫어하지만 전 3편은 괜찮았고 4편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5편은 잘 기억이 안 나요. 여기까지가 이 시리즈에 대한 제 의견이지요. 아, [사라 코너 연대기]는 못 보았어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3,4,5편이 없는 척하고 만든 속편이라고 하는데, 그건 별 의미가 없는 말 같아요. 이 세계에선 시간 여행 때문에 끊임 없이 평행 우주가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3,4,5편의 평행우주와 [터미네이터 2] 확장판의 우주도 어딘가에 있겠지요. 다들 각자의 시간선에서 자신의 운명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고 있겠지요.
몇몇 사람들은 이 영화를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비교했어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깨어난 포스]가 [새로운 희망]의 리메이크처럼 보이는 속편인 것처럼, [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 1,2,3편을 짜깁기해 리메이크한 것 같은 영화예요. 그리고 그 리메이크 작업 중 여성 비중이 늘었어요.
볼까요. 언제나처럼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누군가를 죽이려 와요. 그 누군가는 멕시코의 공장에서 일하는 대니라는 평범한 여자예요. 1편에서처럼 미래에 온 전사가 타겟을 보호하려 하는데, 이 사람은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강화 육체를 가진 인간 여자예요.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는 3편의 터미네이터처럼 액체금속 피부를 입은 로봇이고요. 그리고 여기서 사라 코너와 T-800가 [깨어난 포스]의 한 솔로와 츄바카처럼 끼어듭니다.
이전 시리즈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악당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미래에서 터미네이터가 오긴 했는데, 스카이넷이 보낸 게 아니에요. 사라 코너가 바꾼 미래에서 스카이넷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류와 전쟁을 벌인 리전이라는 인공지능이 보냈지요. 한 번 역사를 바꾸어 종말을 막았지만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역사가 수렴된 것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많이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사라 코너의 귀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할 수밖에 없어요. 그건 단순히 사라 코너 개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래에서 온 기계와 맞서 싸우며 전사로 성장해가는 여자'라는 1,2편의 주제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지요. 이제 우리편 네 명 중 세 명이 여자예요. 1편에서 중요했던 이성애 로맨스와 성모 테마는 완전히 사라졌고요. 그 과정 중 이전 시리즈를 끌어가던 존 코너가 매정할 정도로 확실하게 지워졌는데, 전 그 과정이 조금 불편하지만 (고정 캐릭터를 버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이 영화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번 T-800의 사용도 좋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궁금한 적 없었지만 흥미로운 질문이 이 영화에서 던져집니다. "만약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임무 수행에 성공한다면 그 뒤에는 무엇을 하나?" 영화는 이 질문을 기반으로 터미네이터의 새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이번 T-800은 악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무도덕적인 기계예요. 임무 수행이 끝나고 스카이넷으로부터 명령이 끊기자, 스스로의 길을 찾게 된 학습 능력이 있는 존재지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하는 새 터미네이터는 이전과 확실히 다른 존재이고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영화는 좀 잡다한 편입니다. 드라마도 그렇고, 액션 영화로도 그래요. 최소한 세 편의 영화 재료들이 섞여 있으니 1,2편의 단순명쾌함은 없지요. 이미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조금 다른 식으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합리적인 직선으로 간다는 느낌도 안 들어요. 이건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지 않은 속편의 한계겠지요. 액션 장면도 불만이 좀 있습니다. CG와 기타 특수효과는 확실히 더 낫죠. 하지만 액션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요. 온갖 종류의 충돌과 폭발이 끊임없이 일어나긴 하는데, 그러는 동안 '주인공이 어디에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죠. 얼마 전에 [터미네이터 2]를 다시 보았기 때문에 그 결함이 더 눈에 들어오더군요. [터미네이터 2]는 지금 보면 둔중하고 느린 영화지만 액션은 감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철저하게 말이 되게 구성되어 있거든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