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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롤

   개요   :  액션, 스릴러

   개봉일   :  2019-11-27

   감독   :  알렉산드르 아야

   출연   :  카야 스코델라리오, 배리 페퍼

   등급   :  15세 관람가



(마지막 문단에 스포일러가 있어요. 트위터에서 검색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전 늘 악어가 상어보다 호러 영화 만드는 데에 더 쓸만한 동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수륙양용이니까. 하지만 만들기는 늘 상어가 더 쉬웠지요. [죠스]의 상어 모형은 원시적이었지만 스크린 위에서는 충분히 사실적이었잖아요. 하지만 설득력 있는 악어를 만드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죠. 공룡이 더 쉬워요. 사람들은 영화 속 공룡에게서 그렇게까지 정확한 사실성을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공룡을 만들 수 있다면 악어 대신 그냥 공룡을 만들고 말죠.

그래도 꾸준히 영화가 나오긴 했죠? 전 [엘리게이터]를 재미있게 본 세대에 속합니다. [플래시드]도 있었고 [로그]와 [블랙 워터] 같은 영화들도 있고요. CG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늘어났어요. 아, 검색해보니 한국 영화도 있었어요. [악어의 공포]라는 1978년작입니다. [죠스] 이후 후닥닥 만든 아류 영화일까요.

알렉상드르 아야의 [크롤] 역시 악어 영화입니다. 근데 늪지 같은 곳이 아니라 평범한 교외 주택가가 배경이에요. 어쩌다가? 허리케인으로 인근의 악어 농장에 갇혀 살던 악어들이 풀려난 것이죠. 그러고 보면 다 인간들 탓이에요. 괴물 같은 허리케인은 기후 변화의 결과물이고 인간들이 가죽을 벗기려고 악어들을 가두어 사육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났지요.

영화의 주인공인 헤일리 켈러는 플로리다 대학교 수영선수입니다. 하지만 성적이 아슬아슬해서 잘못하면 장학금을 잃을 수도 있어요. 걱정이 태산인데 엄청난 위력의 허리케인이 플로리다에 들이닥치고 이혼한 뒤 슈가라는 개와 함께 사는 아버지와는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걱정되어서 집에 와보니 슈가만 있고 아버지는 없어요. 헤일리는 슈가와 함께 이혼 전에 살다가 팔려고 내놓은 옛 집에 갑니다. 근데 아버지는 지하실에 쓰러져 있고 몇 미터 저편엔 악어가 있어요. 아버지를 데리고 어떻게든 악어를 피해 빠져 나와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헤일리와 아버지 사이의 덜컹거리는 관계가 캐릭터와 드라마를 만들어주긴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거의 철저하게 생존 게임입니다. 아버지는 몸을 다쳐서 잘 움직이지 못합니다. 출구는 두 개 밖에 없는데, 하나는 가구로 막혀 있고 계단은 악어가 막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마리밖에 없었던 악어는 점점 수가 늘어나고요. 헤일리와 아빠가 간신히 해결책을 찾으면 악어가 또 나타나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런 패턴이 1시간 정도의 액션이 흐르는 동안 계속 반복됩니다.

괴물 공포 영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영화이니 신선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영리한 게임입니다. 일단 끊임 없이 위기상황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럴싸하고 그 리듬감이 좋아요. 불필요하게 괴물로 만들지 않으면서 악어들도 잘 써먹고 있고요. 현실성을 깨지 않지만 그래도 무서운 야생 동물인 거죠.

가장 좋은 건 헤일리 역을 연기한 카야 스코델라리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액션 영웅이에요. 슈퍼히어로처럼 엄청난 능력은 당연히 없지만 등장 때부터 체력이나 의지 같은 게 믿음이 가고 영화 내내 그 믿음을 증명해보입니다. 베리 페퍼가 연기한 아빠와의 호흡도 나쁘지는 않아요. 적어도 영화의 액션을 끌어내리지는 않아요. 헤일리 캐릭터에는 그런 특저 부녀 관계에서 자란 사람의 위태로움이 있는데 그게 캐릭터에 에너지를 끊임없이 에너지를 넣어줍니다.

아, 그리고 개. 영화가 개를 잘 썼어요.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요새 호러 영화 유행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개를 죽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영화가 훨씬 재미있어졌어요. 슈가가 오래 살아남을수록 관객들은 그 개를 걱정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 여분의 서스펜스가 생기는 거죠. 사실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죽이는 호러 영화들은 좀 식상하지 않습니까.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