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일 : 2019-12-04
감독 : 라이언 존슨
출연 :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아나 디 아르마스, 제이미 리 커티스, 토니 콜렛, 마이클 섀넌, 돈 존슨, 키스 스탠필드
등급 : 12세 관람가
(스포일러는 최대한 담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시기 바랍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처럼 엄청난 반전을 숨기고 있는 영화는 아니에요. 노련한 장르 독자/관객이라면 진상과 트릭을 쉽게 눈치챌 수도 있고.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추리영화이고 사전정보 없이 볼 때 그 즐거움이 가장 큽니다.)
라이언 존슨의 [나이브스 아웃]은 황금시대 퍼즐 미스터리의 페스티시입니다. 존슨의 첫 영화가 고등학교 배경의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였던 [브릭]이었으니 본류로 돌아온 것이랄까요. 척 봐도 추리소설 덕후가 쓴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소설에 나올 법한 거의 모든 것들이 있어요. 배경은 대가족이 모여사는 빅토리아 대저택이지요. 죽은 건 이들 가족 위에서 군림해 온 가부장이지요. 현대배경의 영화인데 놀랍게도 괴짜 명탐정이 나옵니다. 이름이 브누와 블랑크이고 어이없는 남부 사투리를 쓰지요. 블랑크는 마지막에 상당히 긴 범죄 강의도 합니다. 전 큰 줄기만 이야기했는데, 영화를 이루는 자잘한 재료들도 다 원래 출처를 찾을 수 있을 정도예요. 그만큼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할란 트롬비라는 저명한 추리작가가 시체로 발견됩니다. 현장과 주변 상황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자기가 면도날로 직접 목을 그은 거 같아요. 하지만 명탐정 브누와 블랑크에게 정체불명의 의뢰인이 사건을 의뢰해오고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됩니다.
도입부는 전통적인 퍼즐 미스터리 같아요. 전에도 여러번 말했지만 이 장르의 이야기는 책으로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영화로 보면 지루해지죠. 크리스티 소설이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라이언 존슨은 그 해결책을 서술방식에서 찾았습니다. 영화는 브누와 블랑크의 추리를 따라가는 대신 관객들에게 정보를 더 일찍 보여줍니다. 그리고 할란의 간병인인 마르타를 주인공으로 삼지요. 관객들이 마르타를 주인공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이입을 하는 순간부터 퍼즐 미스터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강렬한 서스펜스가 발생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더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여기서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아주 치밀하게 짜여진 (영화를 본 뒤에 복선들을 확인하려 다시 한 번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퍼즐 미스터리의 전통적인 재미를 유지하면서도 있으면서도 영화적으로도 생기발랄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전형적으로 인공적인 캐릭터들을 갖고 고풍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화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대한 풍자극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계급갈등과 이민자 문제로 수렴되지요. 라틴계인 마르타와, 가족인 척 위선을 떨지만 이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잘 모르는 저택 사람들의 대립은 거의 동화적이지만 이들을 그리는 존슨의 방식은 그만큼이나 단호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건, 같은 계급 안에 있다면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는 거죠.
70년대 이후 많이 나왔던 크리스티 각색물처럼, [나이브스 아웃]은 화려한 캐스팅을 과시하는 영화입니다. 마르타를 연기한 아나 드 아르마스와 명탐정 브누와 블랑크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중심으로 전개되긴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장르 스타일로 전형화된 자기 캐릭터를 경쾌하게 연기하는 걸 즐기고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재미있어 하는 건 다니엘 크레이그 같지만 말이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존슨은 [나이브스 아웃]의 흥행 성적이 좋다면 브누와 블랑크가 탐정으로 나오는 다른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제목도 정해놨다는데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